지구에서 한 걸음, 슬로워크 디자인 디렉터 문광진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먼 곳의 유토피아를 꿈꾸기는 쉽지만 가까운 내 옆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되 소통을 고민하는 사람. 머나먼 소행성 B612가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지구에서 한 걸음을 떼고자 하는 사람. 사람들이 서로를 판단하기 전에 좀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가길 바란다는 사람, 슬로워크 문광진 디자인 디렉터를 만났다.

글.인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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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붙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이든 사물이든 디자인이든 앞에 또 다른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면 이면에 감추는 것이 생기잖아요. 한정된 수식어가 붙을 때 오히려 본질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세련되고 보기 좋은 디자인을 잘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언제부터 환경 분야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사실 친환경, 친환경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요(웃음). 친환경을 강요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작업을 통해서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 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북극곰에 대해서도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사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반달곰도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잖아요?(웃음) 친환경이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되는 게 안타까워요. 

디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시다니(웃음). 포괄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는 곳곳에 다 스며 있고 생활하는 모든 곳에 다 존재하는 것이죠. 아직은 정확히 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네요. 배워가는 중이기도 하고요. 디자인은…너무 어려워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기억에 남는 개인 작업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청계천에서 이명우 디자이너와 함께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요. 청계천은 진짜 천(川)이 아니잖아요(웃음). 시사하는 바가 있죠. 청계천을 역류해가는 물고기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청계천 물을 뿌려서 표현했어요. 바닥에 그려진 물고기가 25분 정도 유지되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물고기를 사람들이 보면서 각자 생각하고 질문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저걸 왜 할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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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리플렛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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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포스터 _ 방산시장에서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해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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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r – Conference of Green community design

 

 

슬로워크. 재생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하고 달력과 엽서 판매 수익금은 기부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을 생각한다. 이 지구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존재를 되살리되 과도한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민을 일깨운다. 슬로워크의 디자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호흡에 맞춰 천천히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여백을 준다. 삼청동 계단을 오르듯,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게. 한 걸음씩 슬로우, 슬로우, 슬로우.

슬로워크에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생각해놓은 프로젝트는 몇 개 있어요. 예를 들면 음식물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없더라고요. 책임감은 느끼지만 항상 다 먹을 순 없잖아요(웃음). 그걸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1인 가구를 위한 소통 프로젝트도 있고요. 올해 꼭 하고 싶은 건 홍대 작은 상점들을 연결해 지도를 만들어서 알리는 네트워크 작업이에요. 재미있는 캠페인과 놀이문화도 만들고요.

슬로워크 분위기는 어떤가요?
화기애애해요. 마당에서 촛불 켜고 삼겹살 파티도 하고(웃음). 다른 디자인 회사에 비하면 복지가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자유롭고, 휴가도 잘 주고. 2년에 한 번은 안식월 개념으로 한 달 유급휴가도 지원해주죠. 지금은 제가 작업보다 관리에 치중하고 있어서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지점이 보이고요. 양쪽의 시각을 갖고 균형을 갖게 된 건 개인적으로도 도움이 됐어요.

아무리 유토피아 같은 단체라도 개인과의 사이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완전한 합일보다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하나가 같으면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슬로워크가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함께 고민은 하죠. 전엔 혼자 혹은 몇 명이 모여서 극단적인 표현을 추구했는데 점점 실제 삶과의 조율점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궁극적으로 디자인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할까요. 그런 걸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선 만족스러워요.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건가요?
사람들의 스케줄을 컨트롤하고 클라이언트와 회사에서 추구하는 것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게 힘드네요. 디자인을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볼 때 만족스러우면 그게 과연 제일 좋은 디자인인가, 고민하게 될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정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소통이 중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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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공유도시 후원카드

 

최고의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최선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 경험하기 전에 최고의 선택에 매달리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남의 이야기나 텍스트를 듣고 읽더라도 자신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No”라고, 그는 조용하지만 결기 있게 말한다. 테드 강연에 나가면 어떤 강연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리셋”이라고 대답한다. 당신들이 본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배움은 거기에서 끝이기에.

옳고 틀림을 떠나 자신의 시각으로 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어렸을 때부터 조금 비뚤어지게 보는 경향이 있었어요(웃음). 뭔가 뜬다 싶으면 사람들이 그곳으로 다 몰려가는 것도 이상하고. 디자인을 배우고 일을 시작하면서 시각적인 요소를 어떻게 구현하는가보다 정말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죠. 자연히 갈등도 많고 생각도 많아지더라고요. 전 손으로 만들고 발로 뛰며 행동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데(웃음).

개인의 크리에이티브를 드러내기보다 공익을 더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역량은 부족하지만 아무래도 관심이 가네요. 슬로워크에서 하는 일도 그것과 관련이 많고요. 저희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고민은 늘 하지만 그렇다고 저 자신이 환경 운동가는 아니에요. 쓰레기 분리수거 잘 못하는 날도 많고(웃음).

자연체로서 인간 문광진을 행복하게 하는 건 어떤 건가요?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 땐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요. 이건 술 먹으면 하는 얘긴데(웃음).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세상에 대해 공평과 정직과 나눔을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가족한테는 소홀히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모순이고 오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가족한테 잘하는 사람이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잘하는 것 같아요.

살아오면서 잊지 못할, 크게 영향을 받은 일은 어떤 건가요?
윤호섭 교수님을 만난 일이네요. 그분께는 정말 말로 표현 못 할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때의 배움이 지금도 토대가 되고 있고요.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다가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져요. 전 평생 따라가기조차 힘들 것 같아요. 말로는 설명을 못 드리고요, 직접 만나 뵈어야 알 수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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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There is no green. [우]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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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London Pictures [우] London St. James Church Invitation card

 

 

[출처] TYPOGRAPHY SEOUL
[원문 보기] http://www.typographyseoul.com/323421